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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끌어안은 언어… ‘눈물의 生’에서 웃음을 찾다 -문화일보 기사

by sangokshim 2019. 12. 13.




  심상옥 새시집지금 오는 이 시간 풀밭에 누워시를 외던 시절은 지나간 것이야지금 오는 이 시간은잃어버린 것들을 만나러 서성인다.’  심상옥 시인의 새 시집 지금 오는 이 시간’(마을 발행·사진)의 표제작에 있는 구절이다. 잃어버린 것들을 만나러 서성이는 시간은, 시인이 또 다른 작품 (‘나에게 묻는다’)에서 말한 노을이 지는 나이와 어울린다. 심 시인의 새 시집은 노을이 지는 나이에 만난 세상 풍경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함께 담고 있다. 그 바탕에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가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동시대를 함께 견뎌온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서정의 진경(眞景)을 보여주는 언어로 그려져 있다솔바람 서로 부대끼는 소리 적막하다환한 축복 같던 목련 지는 소리 적막하다/…수직으로 내리는 겨울비 소리 적막하다소리도 없이 눈이 휘날리는 소리 적막하다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는 탄식소리 적막하다지나간 천년보다 하루가 더 길다는 절박한 소리 적막하다.’(‘적막하다중에서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내면이 적막으로 보듬는 풍경이다. 우리 삶에 깃든 어찌할 수 없는 우수(憂愁)를 담고 있으나, 시인은 애련(哀憐)의 정서에만 기대지 않는다.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고통을 헤쳐 온 시간을 미래 지향적인 다짐의 언어로 껴안는다. ‘시련의 끝에서 보면우리의 웃음은 눈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위기의 날들중에서) ‘일요일은 찬 것도 데워주는 따뜻한 햇빛처럼 살아가겠다.’(‘일곱 번째 맹세중에서)세상을 오래 견뎌 온 사람의 지혜를 만날 수 있는 시편도 있다. ‘밀봉과 개봉 사이고배와 축배 사이에 간격이 있고질문과 대답 사이물음표와 마침표 사이에 간격이 있네/…간격이 있어야더 잘 보이는 타인들 사이.’(‘간격중에서)이번 시집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우리는 시인이 들려준 근원의 소리와 함께, 그가 채록해가는 심미적 긍정의 언어를 한없는 빛으로 경험한다고 했다. 심 시인의 심미안은 분명 오랜 세월의 공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언어 감각은 생동의 기운이 넘친다는 점에서 젊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기운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그가 평생 도예(陶藝)를 해 온 미술인이기도 하다는 것은 하나의 근거가 될 것이다. 다음 구절들은 노을 녘에도 무언가를 새로 지으며 떠오르는 해를 꿈꾸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파괴함으로써 나는 창조한다그것이 나의 도예법이다.’(‘나의 도예법중에서) ‘백절불굴의 의지가가마에서 불탄다만 개의 자기가 빛나도반드시 크게 돋보이는 것이 있다나는 계속손을 잘 쓸 생각이라고떠오는 해를 두고맹세할 생각이다.’(‘ 중에서)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