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 삶이여
삶 속에는 왜 그런가요?
물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
나는 몰랐다
삶 속에는 어떻게? 라고
물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
삶은 사람마다 사는 방법이 다르고
삶에는 물음표만 있고 마침표가 없다는 걸 몰랐다
나는 정말 몰랐다
삶은 자신이 써야할
자서전이며 반성문이란 걸 몰랐다
나는 정말로 몰랐다
삶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통이란 걸
알기 전까지는
나그네새
발은 나그네
눈은 구경꾼
내가 밟은 땅
모두 다 길이 되지 않고
내가 본 풍경
모두 다 절경이 되지 않는다
발 한쪽이 비틀, 한다
땅 밟고 서서
땅을 내려다본다
밟고 밟힌 발이 바닥을 친다
누구든 바닥은 있는 것이지
발이 바닥을 칠 때
그때 탁, 차고 오르는 거야
나그네새 한 마리
땅을 차고 오른다
두 발이 하늘로 들린다
나의 발은 나그네
나의 눈은 구경꾼
입
제 입속에
어린 새끼를 미소처럼 머금은
어미 물고기의 입
어린 새끼 입으로
제 살을 뜯어 먹게 하는
어미 가시 물고기
이런 날은
<어머니 >를 쓴 고리끼도
잠시 입을 다물 것인데
내 말의 반은 입
그 반은 침묵
겨우 밥이나 머금은
나의 입은 할 말을 잃을 것이네
귀여 들어라
눈꺼풀을 내리면 풍경이 닫힌다
당신도 , 당신이 앉아 책 읽는
벤치도 닫히고
멀리 단풍 옷 입은 산도 닫힌다
귀가 눈보다 덜 차별적인 것은
닫히지 않고 열려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주지 않아도
내 귀는 가을을 우는 풀벌레 소리를 듣는다
풀벌레 소리에 마음을 더하면
당신이 건넸던 약속의 말
당신이 들려주었던 아픈 이야기
시리아 난민의
절망에 찬 절규도 들린다
그러니 귀여 들어라
세상의 모든 소리를
귀여 제대로 들어라
세상의 모든 소리를
억새풀 설법 說法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풀이
백발의 노승 같다
독경하듯
고 古 , 집 集 , 멸 滅 , 도 道 , 고 , 집 , 멸 , 도 흔들린다
진기한 새
괴이한 돌
이상한 풀이
그의 다른 이름이었을 때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다투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법했다
억새풀 설법이었다
∥감상평설 ∥
내면의 귀를 연 시적 자아의 날갯짓
남금희 (시인 )
수필과 시는 같은 문학이기는 하지만 장르가 다르다 . 수필은 생활글과 같은 산문의 특성을 갖고 있고 시는 응축과 긴장의 내재율을 갖고 있다 . 이 둘은 얼핏 보면 이란성쌍생아 같다 . 그러나 정서는 닮았어도 뼈대는 같지 않다 . 그런 면에서 심상옥 시인의 시는 흐르는 물 같다 . 시의 메아리가 약하다 . 언어로써 이미지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흐르는 물이라고 해서 존재의 본질을 비추지 못할 이유는 없다 . 그래서 다정다감한 시인은 자꾸만 삶의 안부가 궁금하다 . 삶을 붙들고 반성하고 질문하지만 삶은 쉽사리 그 비의를 드러내지 않는다 . “물음표만 있고 마침표가 없 ”(「 안녕하신가 , 삶이여 」 )는 그대는 냉정하다 . 안녕하지도 않다 . 시인은 삶이 “자신이 써야 할 / 자서전이며 반성문 ”이라고 고백한다 .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고통 ”의 죽비를 든 채 말이다.
시인은 안타까워서 「 나그네새 」 처럼 땅을 박차고 오르고 싶다 . 더 높이 더 멀리 , 삶을 조망하고 싶다는 뜻일 게다 . 자연에게서 설법을 듣고 자신을 깨우치고 비상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 그때 멀리서 들리는 음성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 다투지 않는 사람 ”(「 억새풀 설법 」 )이라고 일러준다 . 시인은 “할 말을잃 ”(「 입 」 )기도 하지만 “당신이 전하는 약속의 말 ”과 “고통 받는 자의 절규 ”(「 귀여 들어라 」 )를 듣고자 내면의 귀를 열어 둔다 . “풀벌레 소리에 ”도 가슴 떨며 우주의 음성을 귀담아 듣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
준비는 다 되었다 . 이제 곧 심상옥 시인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 자신만의 언어로 엮어갈 날개를 펼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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