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끌어안은 언어… ‘눈물의 生’에서 웃음을 찾다 [문화일보] 게재 일자 : 2018년 11월 14일(水)
심상옥 새시집 ‘지금 오는 이 시간’ ‘풀밭에 누워/시를 외던 시절은 지나간 것이야/지금 오는 이 시간은/잃어버린 것들을 만나러 서성인다.’ 심상옥 시인의 새 시집 ‘지금 오는 이 시간’(마을 발행·사진)의 표제작에 있는 구절이다. 잃어버린 것들을 만나러 서성이는 시간은, 시인이 또 다른 작품 (‘나에게 묻는다’)에서 말한 ‘노을이 지는 나이’와 어울린다. 심 시인의 새 시집은 노을이 지는 나이에 만난 세상 풍경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함께 담고 있다. 그 바탕에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가 자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동시대를 함께 견뎌온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서정의 진경(眞景)을 보여주는 언어로 그려져 있다. ‘솔바람 서로 부대끼는 소리 적막하다/환한 축복 같던 목련 지는 소리 적막하다/…수직으로 내리는 겨울비 소리 적막하다/소리도 없이 눈이 휘날리는 소리 적막하다/ 아무것도 확실한 게 없다는 탄식소리 적막하다/지나간 천년보다 하루가 더 길다는 절박한 소리 적막하다….’(‘적막하다’ 중에서)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내면이 적막으로 보듬는 풍경이다. 우리 삶에 깃든 어찌할 수 없는 우수(憂愁)를 담고 있으나, 시인은 애련(哀憐)의 정서에만 기대지 않는다. 생로병사에 시달리는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고통을 헤쳐 온 시간을 미래 지향적인 다짐의 언어로 껴안는다. ‘시련의 끝에서 보면/우리의 웃음은 /눈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위기의 날들’ 중에서) ‘일요일은 찬 것도 데워주는 따뜻한 햇빛처럼 살아가겠다.’(‘일곱 번째 맹세’ 중에서)세상을 오래 견뎌 온 사람의 지혜를 만날 수 있는 시편도 있다. ‘밀봉과 개봉 사이/고배와 축배 사이에 간격이 있고/질문과 대답 사이/물음표와 마침표 사이에 간격이 있네/…간격이 있어야/더 잘 보이는 타인들 사이.’(‘간격’ 중에서)이번 시집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우리는 시인이 들려준 근원의 소리와 함께, 그가 채록해가는 심미적 긍정의 언어를 한없는 빛으로 경험한다”고 했다. 심 시인의 심미안은 분명 오랜 세월의 공력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언어 감각은 생동의 기운이 넘친다는 점에서 젊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기운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그가 평생 도예(陶藝)를 해 온 미술인이기도 하다는 것은 하나의 근거가 될 것이다. 다음 구절들은 노을 녘에도 무언가를 새로 지으며 떠오르는 해를 꿈꾸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파괴함으로써 나는 창조한다/그것이 나의 도예법이다.’(‘나의 도예법’ 중에서) ‘백절불굴의 의지가/가마에서 불탄다/ 만 개의 자기가 빛나도/반드시 크게 돋보이는 것이 있다/ 나는 계속/손을 잘 쓸 생각이라고/떠오는 해를 두고/맹세할 생각이다.’(‘ 손’ 중에서) 장재선 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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